# 프로포즈와 함께 시작된 결혼준비
여느 날과 다르지 않던 금요일 저녁에 예상치 못한 프로포즈를 받았다. 오래 만나온 까닭에 언젠가 결혼을 하겠거니 막연히 생각해왔지만, 그게 언제가 될 줄은 몰랐었다. 7월 7일 남자친구의 기습 프로포즈로 그 날 부터 결혼 준비가 시작되었다. 보통 결혼 준비를 시작하면 일 년 뒤 쯤 결혼을 하게된다. 반대로 말하면, 오늘이 결혼식 D-365일이 된다는 것이다. 프로포즈의 감동이 지나간 자리에는 막연한 두려움이 몰려왔다. 우리 둘은 결혼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데 어떡하지? 대체 뭐부터 해야하지? 할 게 엄청 많다고 하던데....
남자친구가 친한 직장 동료에게서 "플래너" 를 소개 받아왔다. 플래너는 웨딩 플래너를 말하는데, 결혼 준비 전반적인 과정에 함께하면서 결혼에 도움을 준다. 대부분 결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우리도 결혼은 처음인지라 ㅎㅎ 플래너의 도움을 받기로 결정했다. 바로 플래너와 미팅을 잡았고, 청담에서 미팅을 하고 왔다.
플래너님은 매우 친절하셨고, 결혼 전문가 답게 결혼식 일자에 맞게 해야 할 일들을 착착 정리해주셨다.
7월이 결혼식이면, 한 달 전에는 예식 이벤트와 식전 영상을, 두 달 전에는 청첩장을, 세 달 전에는 스튜디오 촬영을....
결혼식을 디데이로 모든 일정을 정리해주셨다. 플래너님과 함께라면 결혼이 어렵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플래너님은 예산에 맞는 결혼식장, 스냅 사진, DVD 업체 리스트를 뽑아다 주시고, 각각의 장단점과 각격 등을 상세하게 안내해 주셨다. 우리는 A, B, C, D 중에 하나를 고르면 됐다.
# 이미 모든 게 정해져 있어. 너희는 돈만 내면 돼!
플래너님의 진두지휘 하에 결혼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고 있었다. 결혼식장을 정하고 나니, 결혼 식장에 맞는 스냅 사진 업체를 추천해주시고, 결혼식 당일을 영상으로 기록할 DVD업체를 추천해주셨다. 솔직히 뭐가 다른지 모르겠는 리스트 중에 열심히 분위기나 촬영 스킬, 가격을 비교해서 하나를 고르면 또 다음 선택할 거리를 주셨다. 그 다음으로는 신랑 맞춤 턱시도 업체를 골라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그리고 그 다음 선택. 처음 예식장 정하고, 몇 가지를 고를 때는 우리가 드디어 결혼을 하는구나 하는 설레임과 즐거움이 있었지만, 선택이 계속 될 수록 현타가 오기 시작했다.
첫 번째 현타는, 이미 모든 게 정해진 결혼식 형식에 우리 둘을 끼워맞춰 넣는 결혼 문화에서 왔다.
결혼식 당일 사진을 찍어 줄 업체를 고르려고 결혼식 사진을 보면, 개성은 전혀 안보이고 다 똑같은 모습이다. 그럭저럭 고급스러운 예식장에, 새 하얀 드레스에, 턱시도에, 서로 다른 점을 찾기가 틀린 그림 찾기만큼이나 어렵다. 그게 현타가 오는 게, 그냥 다른 사람의 결혼식 사진에 내 얼굴만 바꿔서 넣으면, 내 결혼식 사진이라고 해도 아무도 모를거다 ㅎㅎ
정해진 형식은 결혼식장 뿐이 아니다. "결혼 과정"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정해져 있다. 소위 스드메라고 하는, 스튜디오 - 드레스 - 메이크업은 익히 알려진 결혼 필수 준비 품목이다. 그런데 실제 결혼 준비를 하면, 스드메랑 비슷한 필수 품목이 몇 개는 있다. 그리고 이게 많이 정형화되어 있어서, 그 과정에서 하나라도 틀어지면 쟤네는 뭐가 부족한가보다 생각한다. 그렇게 보이는 게 싫으니 안 할 수가 없다.
스튜디오 - 드레스 - 메이크업에 추가로, 예식장 - 예식 뷔페 - 결혼 반지 - 결혼식 사진 - 결혼식 영상 - 답례품 - 신혼여행 - 혼주정장 - 혼주 한복 - 청첩장 등..
결혼식에 품목이 정해져 있다보니, 가격 비교가 가능하다. 결혼 식장은 4백만원 대부터 1천만원 대까지. 스튜디오도 1백만원부터 3백만원까지. 드레스도, 메이크업도 범위가 정해져 있다. 누구는 얼마짜리 결혼식을 했다더라 소리가 돌기 딱좋다!
이렇게 두 번째 현타인 비용으로 이어진다.
뭣 모를 대학생 때는 사회 초년생 커플이 결혼식에 모은 돈을 다 쓰고 0원에서 시작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참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 준비를 하다보면 그 커플도 그러고 싶지 않았을텐데 어쩔 수 없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결혼식에 해야 하는 것들이 이미 정해져 있고, 가격대는 말도 안되게 높다. 결혼식장 한두시간 대여 비용이 수 백만원에서 시작한다. 스튜디오 비용도 수십에서 수백이고, 드레스도 그렇고. 그런데 그걸 안 할 수가 없다. 결혼식을 집앞 도로에서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제 입던 청바지에 반팔티를 입고 결혼을 할 수도 없다. 사실 결혼식장을 저렴한 곳으로 해보려고 했지만, 저렴한 곳은 교통편이 안좋거나, 식사 퀄리티가 좋지 않거나해서 결혼식장에 오신 사람들에게나 부모님께도 체면이 살지 않을 것 같았다.
A : 결혼식 사진을 뺄까? 어차피 결혼하고 나면 꺼내서 볼 것 같지도 않아.
B: 결혼식 하는데에 예식장에, 드레스에, 턱시도에 비용을 그렇게 많이 들여서 하는데 사진을 안찍게? 하객들이랑 사진도 안찍고?
A: 그건 그렇네. 그럼 결혼식 영상을 뺄까?
B: 결혼식 영상은 플래너님이 추천해주셨잖아. 안 하면 후회한다고. 결혼 반지를 저렴한거로 할까?
A: 결혼 반지는 한 번 하면 평생 하는건데 아낄 필요 없다고 생각해. 비싼게 예쁘기도 하고.
이렇게 무엇 하나도 양보할 수 없는 우리는 남들 다 하는 결혼식과 같은 모양새를 띄기 시작했고, 우리는 열심히 모아온 재산 대부분을 탈탈 털어서 결혼식 준비를 하고 있다. 계약 하는데에 평생 써본 적 없는 큰 돈을 쓰면서도, 무엇 하나를 비싸게 하면 예산이 초과될까 혹시 예상하지 못한 비용이 더 추가되지는 않을까 덜덜 떨고있다. 그러다보니 억울해졌다. 이미 결혼에 해야 할 것은 다 정해놓고,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결혼을 하려면 가진 돈을 다 내놓으라는 강도가 따로 없다. ㅠㅠ
# 누칼협? 그건 아니지만
이십대 후반이 되도록 우리나라에 살면서 결혼 문화를 잘 몰랐다면 거짓말이다. 결혼 문화 이런거 다 알고 시작한 것 맞다. 프로포즈부터 결혼식까지 누가 정해진 대로 하라고 칼들고 협박한 것은 아니다. 나나 남자친구나 사회에서 하라는 대로 말 잘듣는, 공부 열심히 하는 모범생 같은 사람들이라 결혼도 정해진대로 아마 잘 따라할 것이긴 하다. 남들이 다 하는 결혼을 준비하는게 마냥 불행하다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머리로 결혼 문화가 어떻다는 걸 알고있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게 참 다르긴 하다. 문화라는 게 참 무서운 것 같다. 누칼협은 아닌데, 그냥 그게 당연하게 그렇게 되고 있는 것. 아무튼 그렇게 결혼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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